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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 시간 2019-05-22 16:43:08 조회수 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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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동물의 서식지이자 시민의 쉼터인 도시공원의 난개발 막아낼 대책 세워야

 

 

이정현(전북환경연합 선임활동가)

 

 

사냥을 나온 담비 한 마리가 미류나무 우듬지까지 올라가 까치둥지를 덮쳤다. 어미 까치는 담비를 쫓기 위해 필사적으로 둥지 주변을 맴돌며 “까아 깍” 울며 격렬하게 저항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둥지를 털고 나온 담비는 여유있게 나무를 타고 내려왔고, 기다리던 다른 담비가 바톤 터치를 하듯 다시 둥지를 털었다.’

지난 1일 전주 야산에서 담비의 사냥 모습이 밭일 나온 주민의 휴대폰 카메라에 잡혔다. 최근 모니터링 무인카메라나 시민 제보에 의해 담비의 사냥 모습이 포착된 사례가 있었으나, 나무를 타고 새 둥지를 터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힌 것은 처음이다. 또한 모악산 일대에 담비가 서식한다는 문헌자료는 있으나 전주 일대에서 담비가 발견된 것 역시 최초다.

 

멸종위기종2급 담비 ⓒ국립공원관리공단

 

어쩌다 담비는 높은 나뭇가지 위까지 올랐을까? 먹이의 반 정도가 다래, 고욤, 감, 버찌 등 즙이 많고 달달한 열매를 좋아하는 잡식동물 담비에게 겨울은 오로지 사냥에만 의존해야 하는 보릿고개다.

 

담비의 발바닥. 한가운데 억센 털이 나 있어 얼음이나 나뭇가지에서 미끄러지지 않는다.

 

사냥도 쉽지 않아 겨우내 굶주렸을 담비. 한가운데 억센 털이 나 있어 얼음이나 나뭇가지에서 미끄러지지 않는 나무타기 선수인 담비에게 봄철 새 둥지는 손쉽게 얻을 수 있는 단백질 공급원이다. 어미 새들도 격렬하게 저항을 해보기는 하나 불가항력이다. 그렇다고 사시사철 둥지를 공격하지는 않는다. 새들이 알을 낳고 품고, 새끼를 기르는 봄에만 어린 새끼를 먹잇감으로 삼는다. 생태계 먹이사슬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오직 사람만이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자동차 로드킬로 유해조수(有害鳥獸) 사냥으로 새끼든 성체든 가리지 않고 죽인다. 꿩 먹고 알도 먹는 것은 사람뿐이다.

호랑이와 늑대 등 맹수가 사라진 우리 숲에서 연중 대형동물을 사냥하는 최상위 포식자 담비. 족제비, 오소리, 수달과 친척뻘인 족제비과다. 이 집안이 대략 머리가 좋고 호기심이 많다. 몸길이 50~70센티미터, 몸무게 3~5킬로그램의 중간 크기 동물이다. 담비는 체구가 작으나 지리산 반달가슴곰만큼이나 행동권이 넓다.

 

오랫동안 담비를 연구해온 최태영 박사(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는 자동위치추적기 장착기 연구결과 “담비는 체구가 비슷한 삵(3.7㎢), 오소리(1.2㎢), 너구리(0.8㎢) 보다 수십 배의 넓은 행동권(59.1㎢)을 보였으며, 어미로부터 독립한 새끼는 40km 이상 멀리 이동했다” 고 설명했다. 이처럼 넓은 행동권을 지닌 담비는 우산종(Umbrella species)으로서 생태계 보호지역의 설정, 생태축 복원, 생태통로 조성 등에 활용 가치가 크다고 강조했다.

먹잇감을 분석 결과도 흥미로웠다. 배설물을 분석해보니 농업에 피해 주는 멧돼지․고라니․청설모․말벌의 천적이었다. 최박사는 담비 1무리(3마리)가 연간 고라니(성체) 또는 멧돼지(새끼) 9마리를 사냥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먹이 빈도는 고라니․노루가 멧돼지의 1.2배로 비슷했다. 단일 종으로는 잣, 호두, 밤 등 고소득 견과류에 피해를 주는 청설모가 먹이의 5.7%로 가장 많았다. 담비 1무리가 연중 75마리의 청설모를 사냥한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양봉에 피해를 많이 주는 말벌이 전체 먹이의 2.4%를 차지했다. 재미있는 건 먹잇감이 되는 말벌의 50% 이상이 여왕벌이라는 것이다. 말벌 개체군의 조절에 크게 기여 하는 셈이다. 담비의 생태계서비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육식성 동물이지만 다래와 버찌 같은 과즙이 많은 열매가 먹이의 37.7%를 차지한다. 씨를 품은 열매들은 담비의 뱃속에서 먼 거리를 이동해 넓은 곳에 씨앗을 퍼트린다. 최박사는 열매를 먹고 난 담비가 4.6km 구간에 12회에 나눠 배설한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어미로부터 독립한 어린 담비의 이동 경로
※ 2011년 4월에 지리산(전남 구례)에서 태어난 담비(암컷)가 2012년 4월 24일에 어미로부터 독립하여 새로운 서석지를 찾아 이동한 경로로서 5월 4일에 전남 순천시 송광면을 지나 이동하던 중 로드킬로 사망하였음(환경부 보도자료 2013.1.14.)

 

담비의 특성상 도심 인근에서 발견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산 능선을 따라 먼 곳까지 이동하면서 숲이 울창한 곳에 살던 담비가 전주 야산인 천잠산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는 천잠산이 모악산자락과 완전하게 단절되어 있지는 않다는 것이고, 도 산 너머는 대학에 신도시가 이어져 있지만 아직까지 야트막한 산자락에 복숭아와 배밭이 자리 잡고 있는 고즈넉한 도시공원구역이다. 시공원의 숲이 생태적으로 건강하게 안정화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담비 배설물에서의 포유류 종별 먹이 비율(환경부 보도자료 2013.1.14)

 

담비의 출현은 도시공원이 단순하게 시민의 쉼터나 도심의 온도를 낮춰주는 역할을 넘어 멸종위기 야생동물의 서식지 역할까지 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지난겨울 근처 도로에서 담비 로드킬 제보가 있었고, 이번에 2마리만 보인 것으로 볼 때 이곳을 자주 이용하고 있을 가능성도 높다는 점에서 정밀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곳 역시 전주 서부신시가지와 혁신도시 가까이에 있다 보니 도시공원 일몰제 시기에 맞춰 민간임대아파트 2300세대를 짓겠다는 제안이 나왔다. 광역 생활폐기물소각장과 가까워 민원 소지가 많을 것이라는 의견으로 단칼에 보내긴 했으나 업체에선 쉽게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

이런 와중에 담비의 귀환은 도시공원을 지켜달라는 뭇 생명의 현신일 것이다. 담비가 사는 건강한 숲, 그 숲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의 삶도 더 다양하고 풍요로워질 것이다.